[권력과 부패의 심리학]
처음엔 직원 몫도 생각하지만 권력 커지면 자기 이익이 우선
권력엔 마약 같은 중독성 있어 도덕적 의지로도 거부 잘 못해
유대감 있으면 죄의식 줄어 집단주의 강한 국가 부패 심해
정권이 바뀔 때를 전후해서 권력자들의 비리가 어김없이 터져나온다. 지난 정권의 잘못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지 못하는 권력자의 핏줄과 측근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힘든 게 국민의 심정일 것이다.
뇌물과 권력이 얽힌 부패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각국 GDP(국내총생산)를 다 합한 금액의 3%인 1조달러(약 1140조원)가 매년 뇌물로 상납된다. 권력은 왜 부패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이 물음에 대해 인간 심리에 근원을 둔 재미있는 답들을 내놓고 있다.
스위스 연방공과대학 연구진은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부패에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평범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고용주가 돼 가상의 종업원에게 급여를 주는 게임을 했다.
세 가지 선택이 가능했다. 자기 몫을 줄여서 종업원 급여를 올리거나 종업원 몫을 줄여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것, 아니면 양자 모두 그대로 두는 것이었다. 실험은 소액이지만 실제 돈을 이용해 진행됐다. 실험 시작 전 종업원 월급을 떼서 자기 급여를 올리겠다고 말한 사람은 4%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험이 반복될수록 이 선택을 하는 사람이 늘었다. 특히 종업원 수가 늘어 권력이 커지자 부도덕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 45%나 됐다. 도덕적 자신감은 결국 위선이었던 셈이라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팀은 권력이 위선을 강화한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보여줬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살아오면서 많은 권력을 가졌던 상황 아니면 그 반대 상황을 상상하라고 주문했다. 그다음에는 각자의 이마에 알파벳 'E'를 써보도록 했다. 권력을 상상한 그룹은 상대가 봤을 때 'E'가 아니라 '∃'라고 쓰는 경향이 강했다〈작은 사진〉. 자기 쪽에서 바라보면 바로 쓴 것이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엔 거꾸로 된 글자였다. 반면 권력이 없는 상황을 상상한 그룹은 타인이 읽을 때는 바른 글자지만 자기 시각에서 보면 거꾸로 된 글자를 썼다.
연구진은 또 회사 돈으로 출장을 가면서 경비를 부풀리는 일에 대해 도덕적인 평가를 해보라고 했다. 권력을 상상한 그룹이 가장 강한 톤으로 비난했다. 하지만 이 그룹은 주사위를 던져서 나오는 숫자에 비례해 복권을 받는 게임에서는 숫자를 부풀리는 경향이 강했다. 권력감에 충만한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강해져 남들에겐 엄격하고 자신에겐 관대한 속성을 보여준 것이다.
권력의 위선을 도덕적인 의지로 거부할 수는 없을까. 아일랜드 트리니티 컬리지 더블린의 이언 로버트슨 교수는 그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개코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권력감은 코카인과 같은 중독성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권력감은 도파민이라는 신경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해 뇌의 중독 중추를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집단의 하위에 있는 개코원숭이는 지위가 올라갈수록 도파민 분비량이 늘었다. 그럴수록 공격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쪽으로 변모했다. 로버트슨 교수는 "권력이 강할수록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고 자신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는 성격이 된다"며 "절대 권력의 속성을 생물학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패가 권력의 속성이라면, 왜 특정한 나라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 것일까. 캐나다 토론토대학 연구진은 한국을 포함한 21개 국가와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전 세계 부패인식지수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그 결과 소득수준이 같으면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일수록 부패가 만연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집단주의가 강한 사회에서는 뇌물을 주고받는 사람들 간의 유대감이 죄의식을 희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가 남이가'라는 패거리 의식이 강하면 부패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길성 기자 atticu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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