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숙소에 가서 술 한잔 할래요?"
지난 3일 오후 10시 30분쯤 충남 보령 대천해수욕장에서 고교 3학년 김모(18)군과 친구 3명이 담배를 입에 문 채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이 같은 말을 건넸다. 김군 일행만이 아니었다. 이날 대천해수욕장 시민탑광장에는 수백 명의 청소년들이 김군 일행처럼 '즉석만남'을 시도하고 있었다. 만남이 성사된 청소년들은 어김없이 편의점이나 마트에 들러 술을 사고, 삼삼오오 모텔·민박으로 향했다.
휴가철 해수욕장이 청소년들의 '술 해방구'가 되고 있다. 방학을 맞아 해수욕장을 찾은 청소년들은 감시의 눈길을 피해 '마음껏' 술을 마시고, 심지어 처음 만난 이성들과 혼숙(混宿)도 했다.
◇해수욕장은 청소년 술 해방구
4일 오전 0시쯤 경기도 안산에서 왔다는 고교 1학년 박모(16)군 등 청소년 8명은 대천해수욕장 시민탑공원에 쪼그려 앉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박군은 "어제 집 근처 '뚫리는 집'(청소년에게 술을 파는 가게)에서 술을 사서 왔어요. 여자애들 꼬셔서 놀려고 했는데 실패해서 우리끼리 어젯밤에 소주 10병이랑 맥주 3병 마셨어요. 오늘은 성공해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라고 말했다.
해수욕장을 찾은 청소년에게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 수 없다'는 현행법은 '무용지물'이었다. 경기도 하남에서 왔다는 고교 3년 홍모(18)군은 "술 어떻게 사냐고요? 여기 술 다 팔아요. 편의점이나 식당이나 그냥 '학생 아니죠?'라고 묻는 게 끝이에요"라고 말했다. 대천해수욕장의 한 마트 주인은 "13년 동안 장사를 했는데 술을 사러 오는 사람 10명 중 8명은 중·고등학생"이라며 "내가 안 판다고 하면 애들이 몇분 뒤에 술병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우리 가게 앞을 지나면서 나를 흘겨보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다"고 말했다.
대천해수욕장뿐 아니다. 3일 오후 7시 30분 인천 을왕리해수욕장에서 여성가족부 청소년보호중앙점검단이 청소년 음주 단속을 벌였다. 상점에서 소주를 사서 민박집 안으로 들어간 한모(18)양 등 3명은 점검단이 들이닥치자 당당하게 91년생이라고 쓰인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다. 경찰관은 "이거 이미테이션(가짜)이네"라면서 "94에서 4를 날카로운 칼로 정교하게 긁어서 1처럼 만든 것"이라고 대번에 알아챘다. 옆방에는 경기도 광명에서 온 김모(18)군 등 남학생 3명과 퇴계원에서 왔다는 여학생(18) 2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바닥에는 담배 3갑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냉장고에는 소주 6병과 맥주 피처 2병이 있었다. 이날 점검단은 4시간 동안 술을 사거나 마시던 청소년 27명을 적발했다.
◇여전한 해수욕장 술 쓰레기들
주폭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지만 '해수욕장 술판'의 가장 큰 후유증인 술병, 안주로 먹던 치킨 상자, 과자봉지 등 '술 쓰레기' 문제는 여전하다. 5일 오전 낙산해수욕장에서 나온 7t의 쓰레기 중 10%가량은 술병이었다. 대천해수욕장에서도 5t가량의 술 쓰레기가 나왔다. 대천해수욕장 환경미화원 임지현(63)씨는 "여기는 요새 오전 3시부터 나와서 쓰레기를 치우는데 치워도 치워도 젊은이들이 새벽 5~6시까지 계속 길가에 버려대니 끝이 없다"며 "피서철에는 매일매일 폭탄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수욕장 술 반입을 규제하고 있는 경포해수욕장의 경우는 지난달 13일 이후 8월 3일까지 쓰레기양은 504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55t보다 33%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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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윤형준 기자 bro@chosun.com
인천=이정원 기자 jardin@chosun.com
보령=허자경 기자 j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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