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축포세대 요즘 나는 슬퍼요"
[Cover Story] '저축의 심벌' 돼지저금통의 한탄
저임금·비정규직 등 세상살이 팍팍하다고
연애·결혼·출산 포기 이어 저축의 매력까지 잃어
"땡그랑 한푼." 불혹을 넘긴 나를 노상 깨우는 소리다. 1966년 1원, 5원, 10원 동전이 나오고, 그 즈음 플라스틱 성형 기술의 발달로 대량생산 체제를 갖췄으니 얼추 70년대 초입이라고 짐작(인터넷 백과사전)할 뿐 사실 정확한 내 나이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탄생 이유만은 명징하다. 저축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 정직하게 돈을 모으는 참 맛을 이 땅에 널리 알렸다. 혹자는 내 몸(대용량 31×23×29㎝)에 500원 동전이 1만2,760개(638만원) 들어가고 그때 무게가 98㎏이나 나간다고 분석했다지만 중요한 건 돈의 액수가 아니라 저축의 가치임을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겠다.
나를 처음 접한 코흘리개들은 어느덧 50대를 지나고 있다. 내 배를 가르던 환희와 푼푼이 저금하는 습성을 잊지 않았다면, 세상풍파에도 열심히 돈을 모아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자동차와 집을 사고 노후를 준비하고 있을 게다.
비록 내가 이제는 제작단가가 액면가보다 높은 동전의 유통을 막는 주범으로 몰리고, 은행에서도 동전 세기 귀찮다고 홀대를 받지만, 저축전도사로서의 소명은 양보할 수 없다. 돈은 욕망이 아니라 인내의 산물이라는 교훈, 티끌 모아 태산이 되는 저축의 묘미를 나만큼 생생하게 가르치고 실천하게 한 경제교사가 있을까.
그런데 요즘은 더할 나위 없이 슬프다. 나를 찾는 손길이 점점 줄어서가 아니다. 미래의 동량인 2030세대가 더는 저축을 하지 않는다고, 아니 못한다는 소문 때문이다. 그들도 한때 고사리 손으로 나를 어루만지고 즐거워하던 기억이 있을 터. 무엇이 그들에게서 저축이 보장하는 밝은 미래를 앗아간 걸까. 기자들의 귀를 빌어 나, 빨간 돼지가 그들의 사연을 날 것으로 들어봤다. 사연 밑엔 주석을 달았다.
영화관련 업종 박모(29)씨: "사글세 내고 고생한 엄마 용돈 드리면 월급의 70%가 사라진다. 월급의 절반 이상을 저축하라는 재테크 기사는 팔자 좋은 소리다. 서울에서 차 한대, 집 한 채 장만하는 게 말처럼 쉽나. 결혼도 싫어진다. 혼자 편히 여행이나 다니련다."
한국어 강사 김모(26)씨: "한 달에 100만원 조금 번다. 아끼면 따로 적금을 들 수 있겠지만 수입도 적고 언제 벌이가 끊길지 몰라 의욕도 없고 현재를 즐기고 싶다. 그것도 나를 위한 투자다."
건강보험에 따르면 지난해 대졸자 중 8명 중 1명꼴로 월급을 100만원도 못 받았다. 월 200만원 이상은 겨우 37%에 그쳤다. 20대의 17.2%는 비정규직이다. 결혼 후 집 장만 기간은 2003년 6.7년에서 2007년 9.4년(국민은행연구소)으로 해마다 길어지고 있다. 물론 대출을 끼고 말이다.
대기업 사원 박모(27)씨: "학자금대출이 2,000만원이나 남았다. 주변엔 연체하는 친구들도 있다. 언제 다 갚을지 막막해서 저축할 맛 안 난다."
중소기업 사원 고모(29)씨: "대학 다닐 때 생활비 명목으로 빌린 고금리 대출이 아직 남았다. 연체될까 봐 겁난다. 그것만 갚으면 즐기고 싶다. 은행 배만 불려주는 저축은 싫다."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학자금대출 연체비율은 4.99%다. 2010년 1월보다 2.19%포인트 늘었다. 연체건수(잔액)도 같은 기간 5만5,141건(1,717억원)에서 7만4,150건(2,297억원)으로 증가했다. 고금리대출을 받은 대학생은 11만명, 이중 대부업체나 사채 이용자는 5만명에 800억원을 빚 진 걸로 추정(금융위원회)된다.
결국 과거에 발목이 잡히고 현재가 불안한 그들에게 저축이 말하는 미래는 사치인 셈이다. '수무푼전(手無푼錢)' 신세니 저축하라는 구호가 씨알이 먹힐 리 없다. 조금 형편이 낫더라도 "차라리 오늘을 즐기자"며 자발적인 저축포기에 나서기도 한다.
오죽하면 지난 10년간 39세 이하 가구주의 가계저축률 하락폭은 전 연령대에서 최고(29.7→24.6%)를 기록(통계청)할 정도다.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저축률이 떨어지면서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미국처럼 성장동력이 위축되고 국가부채가 늘어날 위험이 크다"(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답이 돌아왔다.
세상살이가 팍팍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다는 2030세대를 삼포 세대라 한다는데, 이제 '축포(저축포기) 세대'라고 불러야 할 지경이다. 아직 물정 모르는 요새 아이들은 여전히 한층 다채로워진 내 동료 저금통에 기꺼이 동전을 넣고 있다. 그들마저 빨간 돼지가 선사하는 저축의 매력을 잃는다면 내 신세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가 너무 암울할 것 같다.
부디 빨간 돼지의 기우에 그치길 바란다. 내 주제가를 살짝 비튼다면 '벙어리 저금통이 어휴, (맘이) 무거워'지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입도 없는데 말도 참 많았다. 죄송,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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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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