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정폭력 치료에 효과]
영화 보고 주인공 상황 얘기… 필요한 부분 발췌 또 보기도
상담에 저항 큰 청소년 상대, 얘기 꺼내는 우회통로로 최적
"영화란 영혼에 놓는 주사다." (스튜어트 피쇼프 캘리포니아 주립대 심리학과 교수)
최근 '치유'가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힐링 시네마(healing cinema·치유 영화)'라는 말이 만들어졌고, '영화 치료'도 생겨났다. 영화 치료는 상담과 심리치료에 영화 및 영상 매체를 활용하는 모든 방법을 지칭한다. 외국에서는 VCR이 보급된 1990년대부터 영화치료가 활발히 이루어졌고,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영화 치료를 하는 심리상담소가 생겨났다. 영화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심리치료소는 서울에 두세 곳 정도로 알려져 있고, 일반적인 심리치료소에서도 영화치료를 병행하는 경우가 있다. '영화치료사 자격증'을 가진 치료사들이 이를 담당한다. 자격증은 영상·영화치료학회가 시험을 거쳐 발급한다.
영화치료의 주요 대상은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나 가정폭력 피해자 등이다. "청소년은 상담에 대한 저항감이 크고, 폭력피해자는 자신의 얘기를 꺼내지 못할 정도로 상처가 크기 때문에 이들의 문제에 접근하는 우회 통로로 영화를 사용한다"(한국영상응용연구소 심영섭 소장)는 설명이다.
영화치료의 방법으로는 먼저 영화를 보고 영화 속 주인공과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이 기본이다. 심 소장은 "치료에 활용하는 영화는 일단 피상담자가 여러 번 본 영화가 있거나 좋아하는 영화가 있으면 그걸로 시작하고, 그런 영화가 없으면 피상담자의 취향과 상황을 고려해 함께 영화를 정한다"고 했다. "이때 영화의 미학적 성취나 작품성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다. "피가 난무하는 '텍사스 전기톱 연쇄 살인사건'을 12번 봤다는 피상담자도 있었어요.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그 영화로 상담을 시작했죠."
영화가 정해지면 치료사와 피상담자가 함께 영화 한 편을 다 보거나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본다. 학교폭력 가해자를 대상으로 영화치료를 하는 이지혜 영상·영화치료사는 최근 집단상담을 하면서 청소년들에게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를 보여줬다. 이씨는 "아이들은 영화의 폭력적인 장면을 보면서 '맞을 짓을 하니까 맞는다'는 반응을 보였고, 가정이나 학교에서 폭력을 당한 경험을 얘기했다. 이미 폭력에 무감각해진 아이들이 가해자가 된 것이다"라고 했다. "무작정 상담부터 시작했다면 이런 얘기를 꺼내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을 아이들이에요. 영화를 보면 '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부담 없이 얘기하거든요."
피상담자가 심리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를 알아내기 위해 영화의 일부를 보여주고 그 뒤의 상황을 지어내는 '스토리텔링'도 많이 쓰인다. 심 소장은 기자에게 로버트 벤튼 감독의 '피스트 오브 러브' 중 20분 분량을 보여준 뒤 스토리텔링을 하도록 했다. 폭압적인 아버지를 둔 오스카(토비 헤밍웨이)와 크로(알렉사 다바로스)가 사랑에 빠지는데 크로가 점쟁이로부터 오스카가 곧 죽을 것이란 얘기를 듣는다는 내용이었다. '오스카와 크로가 결혼하지만 가난과 양육의 부담 때문에 불행해진다'는 줄거리를 만들었더니 심 소장은 "결혼에 대한 공포가 있는 것 같다. 이걸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지금까지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은 없었어요. 자신의 심리상태에 따라 영화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천차만별입니다."
영화를 통해 상담을 받은 뒤 영화 속 한 장면을 재연하거나 단편 영화를 만들면서 치료를 하는 경우도 있다. 김준형 상담심리사는 최근 공무원 시험 면접을 앞두고 극도로 불안해하는 남성에게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의 '행복을 찾아서' 가운데 크리스 가드너(윌 스미스)가 취업 면접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장면을 보여줬다. "주인공의 어떤 점이 본인에게 없는지 생각하도록 한 뒤 영화의 장면을 재연하면서 '나도 잘한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는데 실제 면접에서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작년 개봉작중 치유 영화 1위는 '완득이'
지난해 개봉한 영화 중 '치유'에 가장 좋은 영화는 무엇일까?
한국영상응용연구소(KIFA)는 최근 '2011년의 치유 영화'로 이한 감독의 '완득이'를 선정했다. KIFA는 2006년부터 해마다 국내외 개봉 영화 중 영혼의 상처에 위로가 되고, 정서적인 감동을 주는 10편의 영화를 '힐링 시네마 베스트 10'으로 선정해 왔다. 지난해에는 완득이를 비롯해 ▲세 얼간이(라지쿠마르 히라니) ▲청원(산자이 렐라 반살리) ▲킹스 스피치(톰 후퍼) ▲파수꾼(윤성현) ▲인어 베러 월드(수잔 비에르) ▲그대를 사랑합니다(추창민) ▲50/50(조나단 레빈) ▲비기너스(마이크 밀스) ▲마더 앤 차일드(로드리고 가르시아) 등 10편이 꼽혔다.
KIFA 측은"'완득이'는 희망과 관용의 너른 품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변희원 기자 nastyb8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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