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9일 수요일

가벼운 짐 작은 차 즐겁기만 하네







[한겨레] [매거진 esc] 여행

대형 SUV 벗어나 소형차로 떠나본 캠핑 블로거 정광호씨의 체험기

“아빠? 오늘은 어디로 캠핑 가요?” 캠핑을 하게 해줘서 아빠가 좋다는 예쁜 딸의 들뜬 목소리에 “주천강자연휴양림”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낯선 소형차의 시동을 건다.

2002년 캠핑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레저용 대형차종인 아르브이(RV)나 스포츠실용차(SUV)만 이용해 왔는데 이번에는 소형차인 현대 i30를 이용하여 캠핑을 떠난다. 처음 운행하게 된 i30 1.6 VGT는 6단 기어에 디젤을 연료로 하는 5인승 승용차인데 공인연비가 20㎞/ℓ인 해치백 스타일이다. 가솔린보다 조금 저렴한 디젤을 주식으로 하고 연비가 좋은 착한 녀석인 것 같아 첫인상은 맘에 들었다.

막상 출발을 앞두고 짐을 싸려니 녹록지 않은 고민거리가 생겼다. 평소 덩치 큰 에스유브이에 루프박스까지 얹고 다녔던지라 큰 고민 없이 짐을 싸곤 했는데 이번 캠핑에는 상대적으로 좁은 수납공간에 필요한 용품을 채워넣어야 하는 새로운 임무가 생겼다. 캠퍼들 표현으로 ‘테트리스 신공’을 발휘할 때가 온 거다. 한치의 빈틈도 남기지 않고 필요한 용품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리기 위해, 신중하게 궁리를 하고 넣었던 용품을 다시 빼내기도 하면서 40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RV에 루프박스까지 쓰다가

소형차에 짐쌓기

테트리스 신공에 40분 걸려


바비큐 장비, 스틸 쿨러, 대형 물통, 발포매트, 사이드 테이블 등이 이 과정을 통해서 이번 캠핑의 동참 포기 선언을 하게 됐다. 특별한 짐싸기 기술을 동원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기본기’에 충실해 짐을 쌓았다. 납작하고 평평한 특대형 매트를 맨 아래 깔고 그 위에 테트리스 블록을 쌓듯 차곡차곡 장비를 쌓았다. 조리도구들과 의자 등이 다음 차례로 올라갔다. 캠핑장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텐트와 타프 치기이니 돔텐트와 타프는 가장 먼저 꺼낼 수 있게 맨 위에 올려놓았다.

이렇게 해서 차 안으로 들어간 용품을 모두 적어보자면 텐트와 그라운드시트, 해바라기 매트, 하계용 침낭 3개를 비롯해 자충베개 3개, 로테이블 2개, 미니테이블 1개, 릴렉스체어 2개, 바비큐체어 4개, 화로대, 트윈스토브, 구이바다, 소프트쿨러, 냄비세트, 식기세트, 마이크로캡슐, 수저통, 양념통, 소형 물통, 설거지 가방, 전기랜턴, 미니랜턴, 헤드랜턴, 이소가스 3통, 부탄가스 2통, 랜턴 걸이대, 전기 릴선, 건조대, 다용도 가방 등이었다. 열거해보니 예상보다 많은 용품이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처음 엄두가 나지 않던 규모에 비해서는 구석구석 들어갈 자리가 많았던 셈이다. 마지막으로 어떻게든 욱여넣어 보려던 부피가 가장 큰 타프셸을 내리고 미니타프를 차에 태웠다. 드디어 출발~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영랑리 116번지에 자리한 오늘의 목적지인 주천강자연휴양림은 해발고도 700~788m의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으며 남한강으로 들어가는 주천강 상류수원지로 맑은 물과 산림이 어우러진 아늑한 공간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넓은 면적에 여러 형태의 숙박시설과 캠핑장 그리고 카라반리조트를 운영하는 곳으로 몇개월 전 새롭게 단장하여 전체적으로 안락하고 깨끗한 휴양림이다. 특히 50여 사이트로 구성된 캠핑장은 파쇄석 바닥에 나무데크로 구성되어 있고 신축된 건물의 샤워장, 개수대, 화장실 등은 캠핑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단, 이곳은 민간이 운영하는 곳으로 국립자연휴양림이 아니기 때문에 이용요금은 일반 캠핑장과 비슷하다.

줄여서 싸간 용품 중에도

사용 안하는 것 있어

겨울 캠핑도 소형차로 도전해봐?


주말에 차를 가지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교통정체를 피하기 위해서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을 이용해서 이동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캠핑장비를 정리하고 소형차에 옮겨 싣는 과정으로 인해 출발이 늦었다. 서울에서 약 160㎞ 떨어진 캠핑장까지 3시간30분 정도 소요되었다. 그래도 일부 구간 서행과 정체의 고통보다는 캠핑이 주는 즐거움이 백만배는 크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는다.

캠핑장에 도착하고 나서 우연히 블로그 이웃들을 만났다. 그 많은 시간과 장소 가운데서 바로 이 시간 이곳에서 반가운 이들을 만나는 큰 선물을 받는다. 예상보다 늦게 도착해서 늦어진 점심시간은 이웃들의 정이 듬뿍 담긴 따뜻한 음식으로 그 맛이 곱절이 됐다. 부른 배를 소화시킬 겸 차에서 짐을 내려 나만의 사이트를 구성한다.

필자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매번 다른 나만의 집을 짓는 기쁨을 누린다. 끝으로 폴대에 태극기를 게양한다. 필자는 어느 해부터 매번 캠핑을 나가면 태극기를 게양한다. ‘태극기 사랑, 나라 사랑’을 마음속으로 외치며. 이제는 캠핑장에서 필자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캠핑장에서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많은 캠퍼들은 캠핑장 인근에서 음식재료를 산다. 캠퍼들은 수납의 짐도 덜고 싱싱한 재료를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경제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어서 참 좋다고 한다. 필자도 횡성에 왔으니 그 유명한 횡성한우의 맛을 보기 위해 주천강자연휴양림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횡성한우 판매직영점에서 맛있는 먹거리를 샀다.

캠핑장에서 아이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형, 오빠, 누나, 언니, 동생, 친구가 된다. 그리고 서로를 인정하고 위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다. 이제 캠핑장에서 일면식도 없는 이웃 캠퍼의 텐트에서 밥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아이들을 보며 우리 어른들의 어색해하는 모습이 정말 어색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몇주 전 이웃 캠핑 블로거의 셋째 아이 돌잔치가 캠핑장에서 있었다. 백일이 되기 전부터 캠핑을 한 사랑스런 아이는 지난겨울 내내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첫 생일을 맞았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의 캠핑은 아이들에게도 매우 좋은 취미임에 틀림이 없다.

소형차를 이용해 캠핑을 하면서 지금까지 너무 많은 짐을 -사용하지도 않거나 못할 장비를- 가지고 다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쓰지도 않을 짐을 챙겼던 것이다. 이번 캠핑은 짐을 최대한 줄였다고 생각했음에도 준비해 간 로테이블 2개 중에 하나는 꺼내지도 않았다.

이밖에도 화로대와 전골이나 라면 등을 끓여 먹을 수 있는 가스스토브인 구이바다, 미니오븐인 마이크로캡슐 등은 사용하지 않았다. 좀더 세밀하게 캠핑 계획을 세운다면 소형차로도 충분히 캠핑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은 엄두가 나지 않지만 짐을 줄이다 보면 동계침낭이나 난로, 연료 등 난방용품이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겨울에도 ‘날씬한’ 캠핑 짐싸기가 가능할 것이라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그리고 출발 전 아내가 ‘장비의 무게를 소형차가 잘 견딜 수 있을까?’라며 약간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우였다는 것을 알았다. 필자의 운전 실력이 뛰어나서라고 으스대고 싶지만 차량 자체에서 운전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참고로 i30의 1리터당 평균 주행거리는 약 15㎞였다.


사람들이 농담처럼 캠핑에 빠지면 차를 바꾸고 집까지 바꿔서 집안 거덜낸다고들 한다. 물론 이건 다소 과장된 핀잔이다. 그럼에도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은 모든 걸 다 이고 지고 가서 즐기는 캠핑이 과연 불편을 감수하면서 자연과 가까워지려는 캠핑의 목적과 얼마나 부합하는가일 테다. 가벼운 짐을 들고 가볍게 떠나기, 이게 진짜 캠핑의 맛이 아닐까.

글·사진 정광호 캠핑 블로거 ‘젊은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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