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9일 수요일

느리게 걷기를 연습해보세요







[한겨레] [매거진 esc] 유럽 소도시 여행

잔잔한 물결의 드넓은 호수를 품은 프랑스의 작은 마을, 안시

스위스 제네바 근처 국경에 인접한 프랑스의 작은 휴양도시 안시의 첫인상은 평화로움이다. 소도시를 여행할 때면 늘 그러하듯이 가볍게 카메라만 달랑 메고 옛 시가지를 향해 걷는다. 알프스 산맥 가까이에 위치한 안시 옛 도심의 중심으로 작은 운하가 흐른다. 안시 호수에서 흘러나온 물이 만들어낸 티우 운하(Canal du Thiou) 길만 잘 따라가도 옛 시가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레퓌블리크 대로에서 바라보는 운하와 마을 풍경은 빼놓지 말아야 할 전망 포인트다. 운하를 따라 물막이 시설이 간간이 있고, 세월의 정취가 느껴지는 오래된 주택들과 레스토랑, 카페들이 줄지어 있다. 운하 물결에 반영되어 흔들리는 오래된 주택들과 파란 하늘빛,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운하를 따라 유유자적 걷다 보면 예전에 감옥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역사박물관으로 쓰는 작은 건물이 단아한 모습으로 운하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다.

안시 호수는 작은 마을에 비해 바다처럼 광대하다. 화려한 페리 유람선이 선착장에 정박해 있다. 그 선착장에 바로 이어지는 ‘유럽 공원’엔 큰 나무들이 시원한 그림자들을 드리웠다. 부드럽게 펼쳐진 잔디밭은 여행자들이 쉬어가기 좋은 공간이다. 유럽 공원을 천천히 거닐다 보면 ‘사랑의 다리’(Pont des Amours)가 나오고, 이 주변 선착장에 유람선 호객행위를 하는 선원들이나 물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여행자들이 보인다. 한 시간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작은 유람선을 탔다. 구릿빛으로 그을린 선장 아저씨는 열네댓명 정도의 승객을 태우고 뜨거운 여름 햇살 속에 물살을 가르며 달렸다. 호수를 둘러싼 알프스의 산들과 깎아지른 바위 절벽의 장관,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물결, 녹음 가득한 초록과 푸른 호수에 가슴이 뚫린다.

언제나 빠른 걸음으로 바쁘게만 일상을 보내던 사람은 안시에서의 느린 걸음에 처음엔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느리게 걷는다는 것, 느리게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진다는 불안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빠르게 산다는 것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는 걸까. 너무 빨리 걸으면 오히려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게 되지 않는가. 안시에서 나는 천천히 걸었다. 마치 느리게 걷기 연습을 하듯이 말이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저녁이 되자 낮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운하 주변 레스토랑과 골목을 가득가득 메운다. 작은 도시지만 여행자들로 가득하다. 안시는 매년 세계 최대의 애니메이션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깊은 어둠이 드리우는 밤, 운하 거리는 레스토랑의 조명과 운하에 설치된 불꽃 조명으로 아름답게 빛난다. 운하 거리를 따라 여기저기서 거리공연도 펼쳐진다. 늘씬한 아가씨 둘이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채 스스로 망가지는 막춤 공연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고요한 호수 마을 안시의 밤, 한낮의 평화로움과는 다른, 여행자들이 뿜어내는 흥겨움과 기쁨이 운하 물결 위로 별빛처럼 반짝반짝 쏟아져내렸다.

백상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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