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30일 일요일

추석 때 '시월드(媤world)'가 두려운 며느리들은...


“왜? 추석에 처가(妻家) 가게?”

순간 귀를 의심했다. 며칠 전 시댁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싱크대와 식탁을 부지런히 오가며 빈 그릇을 치우고 있을 때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시부모와 남편에게 과일을 깎아 내면서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속으로 생각했다. ‘아닐 거야. 설마. 잘못 들은 거겠지.’

집에 돌아와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남편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시 아까 어머님이 추석에 처갓집 갈지 물었느냐”고. 남편은 귀찮은 듯 고개만 끄덕였다. 황당했다. 설령 친정에 가지 않겠다고 해도 시어머니가 어른 된 입장에서 “찾아뵈라”고 해 주실 줄 알았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수시로 찾아뵙고 모셨기에 서운함이 더 컸다. 억울한 마음에 따졌다.

“어머님 너무 하신 거 아니야? 어머님이 그런 식으로 말씀하신다면 요즘 한창 TV 드라마나 인터넷에 나오는 그 ‘시월드(媤world·며느리들 사이에서 시댁을 가리킬 때 쓰는 은어)’의 시어머니들이랑 다른 게 대체 뭐야?”

“엄마가 그냥 갈 거냐고 단순히 물어본 걸 가지고 또 왜 생떼를 써!”

“뭐, 생떼?” 그래, 잠시 잊고 있었다. 저 사람이 그 여자의 ‘아들’이라는 것을. 눈물이 핑 돌았다.

‘아니, 그럴 거면 명절에 시누이들도 전부 오지 말라고 그러시죠! 네? 제사 지내고 점심 먹고 상 치워놓으면 시누이들 벌떼같이 하나둘씩 모여들 텐데…. 자기 딸들 오면 그렇게 좋아하면서, 그 옆에서 소외된, 같은 아파트 살면서 수시로 찾아가 봉양하는 이 며느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으세요? 본인도 여자면서, 딸도 자그마치 넷이나 있으시면서 제발 이러지 말자고요. 네?’

꿈에서였지만 그래도 속은 시원했다. 아침에 눈 뜨며 결심했다. 이번 연휴 때는 친정 안가기로. 대신 시댁에서도 제사만 지내고 밥만 먹고 설거지까지만 해주고 바로 집으로 와서 쉴 거다. 시누이들 올 때까지 기다려서 가식적으로 웃어주고, 수발들 ‘배알’은 내게도 없다. 남편한테도 이미 말했다. “어머니가 나 친정 가는 거 탐탁지 않으시다면, 나도 어머니 딸들 친정 오는 거 앉아서 볼 수만은 없다”고.

며칠 전 ‘눈팅’만 하던 ‘며느리 넋두리 인터넷 카페’에서 본 글귀가 떠오른다. ‘명절 때 며느리와 시누는 마주치면 안 되는 겁니다.’ (다음 인터넷 카페 ‘미즈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토대로 재구성함.)

‘시월드’에서 고통받는 대한민국 며느리들에게는 가장 끔찍한 말이 있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아니, 한가위만 같으라니. 1년 365일이 그 ‘지옥 같은’ 한가위 같다면 저 원수 같은 남편이랑 한이불 덮고 잘 일은 없었을 것이다.

명절 때 해서는 안 되는 말 세 가지가 있다. 결혼 안 한 싱글들에게는 ‘결혼 언제 하냐’, 취업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 ‘직장은 들어갔냐’, 중·고등학생들에게 ‘공부 잘 되냐.’ 그렇지만 며느리들은 이 말 듣는 게 제일 무섭다고 한다. ‘얘야, 언제쯤 올 거니?’

서울에 사는 결혼 4개 월차 ‘강원댁’ 이한빛(가명)씨 시댁은 경기도 안산이다. 시할머니댁은 경기도 부천이다. 시부모님은 남편이 하는 가게에 일주일에 두세번씩은 꼭 오신다. 결혼하고서 시할머니댁도 대여섯번 정도는 다녀왔다. 며칠 전에도 남편과 시할머니, 시할아버지 모시고 1등급 소고기와 회를 사드리고 왔다. 이씨는 솔직히 할 만큼 한다고 생각했다.

28일 오후 이씨는 시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얘야, 내일 12시 전에는 시할머니댁으로 오너라. 다른 친척들도 3~4시쯤엔 인사 오니 손님 맞고 가라. 너희 옷 챙겨서 시할머니댁에서 바로 너희 집 가거라.”

이씨 남편이 하는 가게는 추석 다음 날부터 문을 연다. 이씨 친정은 강원도다. 이씨는 시어머니의 말이 곱게 들리지 않았다. 시집와서 처음으로 ‘소심한’ 반항을 했다.

“어머님, 저도 외동딸이고 부모님이 기다리시는데요...”

시어머니가 기가 찬 듯 이어서 말한다. “원래는 시할머니댁에서 추석 보내고 너희도 안산 내려와서 하루 자고 가야 하는 거다. 그런데 특별히 내가 너 생각해서 봐주는 건데 무슨 소리하는 거냐.”

네, 네 하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끊는다”고 하시기에 “네. 들어가세요” 했다. 수화기 너머로 통화가 끝난 줄 안 시어머니가 시아버지에게 하는 말이 들린다. “쟤 말하는 거 봐. 보통 애가 아니야.” 이씨는 ‘멘붕’이 왔다.

이씨는 답답한 마음에 ‘며느리’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에 하소연했다. 이씨는 “어머님 말씀대로 시할머니댁에 오시는 손님들 다 맞이하고 늦게라도 친정 가야 되나요? 이것저것 준비하고 설거지까지 해놓으면 또 저녁 먹을 시간일 텐데... 암울합니다.”

‘며느리 동지’들은 이씨에게 어떤 조언을 했을까. ‘베스트 댓글’로 뽑힌 글을 보면 이렇다.

‘아뇨. 님 친정 가세요. 남편가게 하루 문을 못 열어도 그건 아닙니다. 나이 먹고 오래 살면 친정 안 가도 괜찮아요. 하지만 지금은 님 마음에 한(恨)이 됩니다. 시모가 보통이 아니시네요. 님은 왜 시댁이 두 군데입니까. 시댁 한 곳 친정 그렇게 챙기는 겁니다. 저도 오랫동안 시 외가 가느라고 친정에 늦게 다녔죠. 어머니 엄살에…. 외할머니 금방 돌아가시는 줄 알고.’

28일 오후 이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씨의 고민을, 추석을 하루 앞둔 29일 오후 4시 20분 현재 3만2698명이 읽었다. 며느리들에게 추석은 ‘전투’다. 각개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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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섭 기자 oasi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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