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패션업체에 근무하는 민모 씨(43·여)는 지난해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했다. 집안일과 자녀 양육의 어려움 속에서도 20년 가까이 근속하면서 부파트장에까지 오른 민 씨였지만 직장 내 ‘왕따(집단 따돌림)’ 앞에선 무릎을 꿇었다. 새로 옮긴 부서에서 남자 파트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왕따를 당한 것이다.
매일 아침 부하직원들은 민 씨의 인사를 잘 받아주지 않았다. 민 씨 모르게 일을 처리하거나 결재 문서를 파트장에게 바로 올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결국 민 씨는 불면증에 시달리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았다. 민 씨는 의사에게 “지금 회사를 관두려니 청춘을 바친 게 정말 억울하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결국 부서를 옮겨야 했다.
아이돌 걸그룹 ‘티아라’에서 왕따로 지목됐던 멤버 화영(본명 류화영·19)이 탈퇴한 것을 계기로 성인 왕따 현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학교 내 왕따 문제에 가려 있었지만 성인 왕따 현상도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지난해 7월 해병대 내 왕따인 ‘기수열외’를 당한 김모 상병(20)이 총기사건을 일으켜 해병대원 4명이 사망했다. 올 2월에는 충남 서산에서 전 직장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한 성모 씨(31)가 엽총을 난사해 1명이 숨지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전문가들은 왕따가 나이와 관계없이 인간이 집단을 꾸려 생활하는 곳에선 항상 일어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취업포털사이트 ‘사람인’이 5월 22일부터 일주일간 직장인 30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3명 중 1명꼴로 “직장에서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왕따를 당한 직장인들은 직장 동료가 자신 몰래 대화를 나누거나 뒷담화를 하고 회식 등 모임에서 소외돼 고통을 받았다. 심한 경우 이직을 택하거나 불면증 또는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기도 했다. 피해자가 문제를 삼을 수 없도록 ‘은따(은근히 따돌리는 것)’를 시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현명호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직장 내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동물 세계처럼 힘이 약하거나 적응을 잘 못하는 사람을 밀어내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성인들이 아동 청소년과 달리 왕따 문제를 고백하지 않아 부각되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왕따를 ‘아싸(아웃사이더)’로 칭하는 대학에서도 매년 3, 4월 따돌림을 당해서 고민이라는 신입생의 고민 글이 학내 인터넷 게시판에 자주 올라온다. 17년간 남미에서 살다가 고교시절 한국에 돌아온 A 씨(28·여)는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대학에서도 아싸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동 왕따는 생김새나 성적 등을 계기로 일어나는 1차원적인 문제라 해결이 쉽지만 어른 왕따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풀기가 쉽지 않다”며 “방치했다간 극단적인 폭력으로 표출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황성혜 인턴기자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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