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반한 한국(57) 중국 유학생의 기차여행
교통수단인 줄만 알았던 열차에 낭만이 넘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니 열차가 정동진역에 도착해 있었다. 새벽 어스름에 잠긴 열차에서 나와 부리나케 해변으로 달렸다. 그 아름답다는, 정동진의 일출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중앙포토]
나는 '기차여행'이란 걸 한국에 와서야 알았다. 중국에서 기차는 그저 이동수단일 뿐이었다. 하나 한국에서 기차는 그 자체로 낭만이었다. 기차에 몸을 싣기만 하면 행선지가 어디든 상관없었다.
지난 6월의 일이다. 여름방학을 맞은 나는 상상만 하던 기차여행을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친구와 여행 계획을 짜다가 '해랑'이라는 레일 크루즈 투어를 알게 됐다. 기차 내 호화시설에서 먹고 자며 전국 명소를 돌아본다는 게 신선했다.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이틀간 한국 동남부를 돌아보는 코스를 예약했다. 중간 등급 객실을 골랐는데 1박2일 통틀어 1인 비용이 60만원을 웃돌았다. 하지만 숙식과 관광비용 일체가 포함돼 있고 승무원이 관광 가이드까지 도맡았다. 나처럼 한국 여행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이 속 편하게 여행하기는 외려 좋을 듯했다.
1 승무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우아하게 열차 타러 가는 길. 마치 내가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2 호텔처럼 정결한 객실. 침대가 푹신해서 한 번 누우면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6월 16일 오전 8시. 일찌감치 서울역에 도착한 나는 두근대는 가슴으로 열차에 올랐다. 정결한 호텔식 객실이 만족스러웠다. 푹신한 침대와 개인 욕실은 물론이고 TV·수건·세면도구 등이 완비돼 있었다.
첫 목적지인 경북 포항에 가기까지 여러 이벤트가 마련돼 있었다.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승객 대부분이 라운지에 모였다. 먼저 각자 자기 소개를 했다. 해외 유학을 앞두고 부모님과 가족여행을 온 학생이며 아기와 조촐하게 휴가를 즐기는 젊은 부부, 할아버지 생신을 기념해 3대가 총출동한 대가족도 있었다. 데면데면하던 얼굴에 배시시 웃음이 번졌다. 투병 중 둘만의 여행을 왔다는 노부부의 사연을 들을 때는 모두가 숙연해졌다. 기쁜 일로든, 슬픈 일로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여행한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 실감이 났다. 이어 전통악기와 동요, 마술 공연이 계속됐다. 다 같이 와인과 과일, 주전부리를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밥과 고기 반찬 등이 담긴 도시락과 푸짐하게 차려진 쌈 재료. 추가 비용 없이 얼마든지 더 먹어도 된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이윽고 점심시간. 밥과 생선, 쇠고기 반찬 등이 도시락에 정갈하게 담겨 나왔다. 고추와 마늘, 상추 등 쌈 재료가 푸짐했다. 고기를 넉넉히 올려 입안 가득 상추쌈을 밀어 넣었다. 추가 비용 없이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어느덧 기차가 포항역에 다다랐다. 셔틀버스를 타고 포항제철소를 탐방했다. 제철소는 규모가 엄청났다. 뻐끔뻐끔 연기를 내뿜는 키다리 굴뚝 행렬을 지나니 널찍한 항구가 나타났다. 거대한 수송선을 거느린 부두가 끝없이 펼쳐졌다. 그 장관에 입이 딱 벌어졌다.
1시간여 달려 도착한 경주에서는 뮤지컬 '미소2-신국의 땅, 신라'를 관람했다. 경주를 도읍으로 삼았던 옛 국가 신라의 역사를 한국 전통음악과 춤으로 표현한 넌버벌 퍼포먼스였다. 한국어를 못해도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변화무쌍한 무대 연출과 생동감 넘치는 연기가 긴 여운을 남겼다. 중국인 관객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느지막이 객실로 돌아온 나는 단잠에 빠졌다. 밤이 깊도록 기차의 운치를 즐기는 승객도 있는 듯했다. 열차에 마련된 작은 영화관에서 DVD를 보거나 최신 잡지를 뒤적이고, 무선 인터넷도 할 수 있었다. 하염없이 차창 밖의 야경을 바라봐도 좋았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이튿날 새벽에 찾아왔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니 차창 밖에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었다. 밤새 기차가 정동진역까지 다다른 것이었다. 바다 쪽으로 한껏 다가선 기차역을 벗어나 해맞이 인파에 끼어들었다. 초여름인데도 바닷바람이 차가웠다. 온몸이 오그라들 정도여서 외투를 여미며 수평선을 응시했다. 동쪽 바다에서 선홍빛 점이 아른거리나 싶더니 곧 온 세상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정말이지 순식간이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황홀경에 젖어들었다.
정동진은 한국 유명 드라마 '모래시계'와 중국인이 즐겨 보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의 명장면을 낳은 장소이기도 하다. '언젠가 연인이 생기면 둘이 정동진에 와서 일출을 봐야지. 기차 타고…'. 정동진의 싸한 새벽공기와 함께 뭔가 뭉클한 것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기차여행의 낭만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리=나원정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기획
진 메이링(金美玲)
1989년 중국 광저우 출생. 한국 드라마에 반해 한국 열성 팬이 됐다. 고등학생 때 자발적으로 한국 유학 계획을 세워 2008년 건국대에 입학했다. 교내 외국인 서비스센터와 레저 스포츠 동아리 활동으로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인터넷 방송국 리얼코리아의 독도 홍보단, 한국 방문의 해 대학생 홍보단 '미소국가대표' 등에서 활약하며 한국을 알리는 데도 일조했다. 현재 건국대 경영학과 4학년으로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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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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