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 장태동 여행작가][[머니위크]장태동의 여행일기/강원도 정선 구미정·사을기]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빨랫줄을 걸어도 된다’는 말이 전해지는 정선 두메산골. 좁은 도로를 구불구불 따라가다 만난 ‘구미정계곡’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산 위의 마을 ‘사을기’에서 한눈에 굽어보는 구미정계곡의 풍경이 압권이다. 참! 아름답다.
정선 읍내에서 임계 쪽으로 향하는 42번 도로를 타고 간다. 임계면소재지를 약 4km 정도 앞두고 나오는 송원삼거리에서 우회전. 길이 좁아지고 도로 옆으로 물길도 이어진다. 그렇게 약 3km 정도 달리다 만나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700m 정도 더 가면 구미정이 나온다.
구미정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 첩첩산중 거대한 계곡에 있는 정자다. 조선 숙종 임금 때 공조참의를 지낸 수고당 이자 선생이 지었다. 정자 건물에서는 보기 드물게 온돌을 깔고 방을 마련해서 겨울에도 사람이 지낼 수 있게 한 게 특징이다. 지금은 벽은 없고 기둥만 남아 있다. 지금 건물은 1946년에 중수한 것이다.
구미정 계곡
◆절벽을 부수는 우렁찬 물소리를 듣다
구미정 앞은 협곡 같은 지형이다. 그 협곡의 기암괴석 위로 푸른 물이 흐르고 물 건너에 하늘을 찌르는 뼝대(절벽의 강원도 사투리)가 우뚝 솟았다.
한강의 발원지 태백 검룡소에서 솟아난 물이 태백의 광동호에서 모였다가 정선 땅으로 흐르며 ‘골지천’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골지천은 그렇게 40km를 흘러 정선 땅 구미동에 이르러 기암괴석에 수직단애의 풍경을 만나고 이자 선생은 이곳에 구미정이라는 정자를 세운 것이다.
구미정이라는 이름은 이자 선생이 정자를 세우면서 주변 경치 중 아홉가지를 꼽아 ‘구미(九美)’라고 한 것에서 유래했다.
아홉가지 경치 중 첫째가 ‘어량’인데 개울에 물고기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비상할 때 물위에 삿갓(통발)을 놓아 잡는 경치를 말한다. 그 다음부터 ‘전주’-밭두둑, ‘반서’-넓고 편편한 큰 돌, ‘층대’-층층 절벽, ‘석지’-구미정 뒤편 반석에 생긴 작은 연못, ‘평암’-넓고 큰 바위, ‘징담’-바위 사이 잔잔한 연못, ‘취벽’-구미정 앞 석벽 사이에 있는 쉼터의 푸른 경치, ‘열수’-구미정 주변 병풍처럼 이어지는 절벽에 있는 구멍과 기묘한 형상의 바위 풍광 등이 있다.
그 옛날 이자 선생이 보았던 그 풍경을 오늘 우리도 보고 있다. 거대한 바위 절벽이 숨 막히게 들어찬 계곡. 뼝대 앞에는 암반 바위가 계곡 바닥 전체를 뒤덮고 있다. 그 위로 시퍼런 빛깔의 물이 흐른다.
정자 아래 바위절벽 끝으로 내려간다. 한 발 헛디디면 낭떠러지다. 비 온 뒤라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마저 사납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절벽을 타고 하늘까지 오를 기세다. 오후의 햇살이 계곡 물결에 반사돼 은빛으로 빛난다. 물줄기는 그렇게 온통 반짝이며 계곡 전체를 빛나게 한다.
바위 절벽 위에 세워진 구미정
◆산 위의 마을 ‘사을기’
구미정의 아홉 가지 아름다운 풍경을 한 눈에 보기 위해서는 사을기 마을로 가야 한다. 사을기 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낙천2리다. 단봉산 아래, 구미정 골지천 위에 있는 산골 오지 마을로 네가구가 농사를 짓고 산다. 옛날에 이곳에 절이 있었는데 그 절이 있는 숲에 새가 많았다하여 사을기(寺乙基)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햇살이 아늑하게 고여 평온해 보인다. 마을길에서 숲길로 1~2분 정도 들어가면 천 길 낭떠러지가 나오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흠뼝대’라고 부른다.
흠뼝대에 서면 넓고 거대한 반석 사이를 휘돌아 나가는 골지천의 푸른 물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아찔한 벼랑 끝 바위에 서서 아름다운 풍경 하나 마음에 담는다.
다시 마을로 나와 나무로 지은 예쁜 집으로 향한다. 17년 전 이곳에 정착한 방성애 씨의 집이다. 민박을 하고 있는 이곳은 ‘방성애 산장’이다.
집 자체도 예쁘지만 집 안팎에 있는 생활도구들이 다 옛 것이다. 산장에 앉아 방성애 씨가 직접 만든 차를 한 잔 마신다. 솔잎과 오디 등을 발효시켜 만든 발효액에 얼음을 타서 만들었다. 한모금에 더위가 ‘싹’ 가신다.
차 한잔 마시며 마을을 바라보는데 산장 앞 밭 옆으로 난 길이 하나 보였다. 길이 산으로 이어지는 듯해서 물어봤더니 지금은 사람이 다니지 않아 길이 없어졌다고 한다. 옛날에는 그 고갯길이 큰 길이었다.
그 고갯길을 넘으면 ‘미락숲’이 있는 ‘미락동’이 나온다. 옛날 미락동에는 큰 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서 절집의 기왓장이 나오고 탑의 갓도 발견됐다고 한다. 절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미륵동’이라고 부르다가 지금은 ‘미락동’으로 바뀌었다. 마을 입구에 조성된 숲인 ‘미락숲’은 골지천 냇물과 잘 어울렸다.
아우라지 나룻배에서 바라본 풍경
◆아우라지, 아우라지!
아름다운 오지, 구미정과 사을기 마을을 돌아보고 다시 큰길로 나가 아우라지로 길머리를 잡는다.
버드나무 낭창거리는 푸른 아우라지 강가에 서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를 바라본다. 강바람이 불어 땀을 식힌다. 한모금 물로 잠시 숨을 돌리고 우리도 나룻배에 올랐다.
‘송천에 물이 불어나면 홍수가 나고 골지천 강물이 불어나면 장마는 멈춘다’고 아우라지 강을 건너는 뱃사공은 말했다. 평창군 도암면에서 시작된 송천과 삼척군 하장면에서 발원한 골지천이 만나는 곳이 ‘아우라지’다. 두 물줄기가 어울려 하나가 되어 흐른다고 해서 ‘아우라지’라 불렀다.
두 물길이 만나는 곳은 여울이다. 강폭이 제법 넓다. 큰 돌과 자갈돌이 강바닥에 깔려 있고 그 사이로 물이 흐르며 ‘아우라지, 아우라지’ 노래를 하는 것 같다.
맑고 깊은 강이 소리 없이 흐른다. 강가에는 버드나무가 바람에 낭창낭창 흔들리며 강가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돋운다. 먼 산은 강을 안고 도는 듯하며 그 강 위로 나룻배 하나 오고 가는 것이다.
사실 아우라지에 다리(오작교)가 생겨서 배를 타지 않고서도 강 건너편으로 갈 수 있다. 다리를 건너면 강가에 정자가 하나 나온다. 여송정이다. 그 정자 앞에 아우라지 처녀동상이 서있다. 정자에 올라 바라보는 아우라지 풍경이 한가롭다.
이곳은 남한강 천리 물길 따라 목재를 운반하던 뗏목 시발지점으로 각지에서 모여든 뗏꾼들의 아라리 소리가 끊이지 않던 곳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전설 같은 이야기가 남기 마련. 뗏목을 타고 먼 곳으로 떠나는 님을 그리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와 장마로 인해 불어난 강물을 사이에 두고 강을 건너지 못하는 남녀의 애절한 마음을 담은 사연 등이 모여 생긴 노래가 ‘정선아리랑’이니 이곳 아우라지는 그 모든 사연을 품고 흐르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아우라지 처녀상과 총각상, 정자(여송정), 아우라지비 등을 세우고 옛날 주막 건물도 복원했다.
아우라지 나룻배도 타고 여송정도 들렀다가 돌다리를 건너 다시 강가 돌탑 앞으로 돌아왔다. 날은 저물고 물비린내 나는 강가에서 옛 추억에 잠긴다.
강가에 어둠이 내린다. 빛이 스러지면서 어둠이 깔리는 그 순간, 강은 아주 잠깐 동안 부풀어 오르고 진공의 적막이 사위에 퍼진다. 시간은 흐르되 모든 것이 정지된 그 찰나를 지나면 다시 ‘돌돌돌’거리는 여울물 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리는 듯하고 강 저 아래 물은 낮게 흐른다.
주변에 민박집도 있고 강가에 텐트를 쳐도 된다. 수도와 화장실도 있다. 가게와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도 있다. 하지만 오늘 같은 여름날은 그냥 강가에 모닥불을 피우고 잠들어도 될 것 같았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여울 소리는 더 크게 울린다. 강 건너 님 그리는 아우라지 처녀의 노래자락인가, 밤 강은 더 외로워 ‘아우라지, 아우라지!’ 목을 놓았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싸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여행정보]
<길안내>
자가용
영동고속도로 - 진부IC - 59번 도로 정선 방향 - 나전삼거리에서 좌회전 - 여량면소재지(아우라지) - 임계 방향 - 송원삼거리에서 우회전 - 약3km 정도 진행 - 삼거리에서 좌회전 - 700m 정도 진행하면 오른쪽에 구미정.
*구미정에서 사을기 마을 가는 길 : 구미정(정자)를 왼쪽에 두고(계곡물을 왼쪽에 두고) 약 800여m 정도 가다보면 왼쪽에 다리(사을기교)가 있다. 다리를 건너 오르막길로 올라가면 사을기 마을이 나온다. 구미정부터 사을기마을 안까지 약 2km 정도 된다.
대중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정선까지 하루 약 9대의 버스가 운행한다. 3시간30분 정도 소요.
현지교통
정선버스터미널에서 임계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임계정류장에서 내린다. 임계정류장에서 반천리 가는 시내버스(마을버스)를 타고 구미정에서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서 내려달라고 하면 된다. 버스가 많지 않고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버스 시간은 사전에 전화로 문의 한다. 정선 시내버스(정선에서 임계 가는 버스 문의 : 033-563-1094). 임계면사무소(임계에서 구미정 가는 버스 문의 : 033-562-6301).
*임계에서 구미정까지 약 8km 정도 거리.
<음식 - 정선의 특산물 먹을거리들>
정선에 가면 먹을 게 많다. 못 살던 시절에 생명줄을 이어주던 음식이 이제는 정선 특산품이 된 것이다. 감자옹심이, 올창묵, 콧등치기국수, 곤드레밥, 메밀국죽, 장칼국수 등 다른 지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음식들이다. 이름도 어찌 그리 예쁜지 모르겠다.
'감자옹심이'는 전분이 섞인 점액성 국물에 감자와 경단과 같은 밀가루 뭉친 것을 넣어 먹는 것인데 식사보다는 별미 혹은 간식이다. 점액성 전분국물이 열기를 머금고 있고 그 맛과 성질이 부드러워서 술 먹은 다음날 술도 깨고 속도 보호하기에 좋은 음식이다.
'올창묵'은 옥수수전분으로 만드는데 그 모양이 올챙이 같다 해서 이름이 붙었다. 이렇게 만든 재료에 양념장을 뿌려 그냥 먹기도 하고 국물을 만들어 숟가락으로 떠먹기도 한다.
'콧등치기국수'는 메밀과 밀가루를 섞어서 칼국수 면발처럼 면을 넓게 뽑아낸다. '후루룩' 입으로 흡입해서 먹다보면 면이 입안으로 들어가면서 면 끝이 콧등을 친다. 그래서 이름도 '콧등치기국수'다.
'곤드레나물밥'은 밥을 할 때 곤드레나물을 넣고 한다. 화전민들이 봄나물로 보릿고개를 넘으며 생명을 연명하던 시절에 먹던 음식이었다.
‘메밀국죽’은 정선에서도 희귀한 음식이다. 멸치가루와 된장으로 국물을 내고 거기에 두부, 콩나물, 주재료인 메밀 등을 넣고 끓여 만드는 음식이다. 거칠면서도 구수한 맛이 우러난다. 햇볕 좋은 가을 누렇게 익어가는 벼 포기의 향기 같기도 하고, 풀 먹인 할아버지 삼베옷 향기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고향 마을 저녁 짓는 굴뚝 연기의 향기 같기도 하다.
*이 모든 음식은 정선 곳곳에서 맛 볼 수 있다. 특히 정선 재래시장 안 먹자골목에 식당이 많다. 정선 읍내 큰길가에도 곤드레나물밥 등을 파는 식당이 몇 곳 있다.
<숙박>
사을기 마을에 ‘방성애산장’이 있다.(033-563-6665. 011-9738-5652. 강원 정선군 임계면 낙천2리 750)
아우라지와 레일바이크 출발지점인 구절리 등지에도 민박 및 펜션이 있다. 정선 남동부에 있는 사북 고한 지역에 모텔이 많다. 정선 읍내에도 모텔이 몇 곳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장태동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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