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양정웅은 거침없는 상상의 세계를 담아낸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21세기에 가장 어울리는 고전”으로 평가한다. 극단 여행자 제공 |
ㆍ연극 ‘한여름 밤의 꿈’ ‘십이야’ 연출가 양정웅
“셰익스피어 전작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 연출가로서의 꿈.”
연출가 양정웅(44·사진)은 소문난 셰익스피어 애호가다. 지난달 31일 만난 그는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거침없는 상상의 세계를 담고 있어서 21세기에 가장 어울리는 고전”이라고 했다. 셰익스피어 전작은 학자에 따라 37개 혹은 38개로도 추정하는데, “그 모든 작품을 내 스타일로 무대화하는 것이 오래전부터 품어온 소망”이라고 했다.
양정웅의 해석으로 현재까지 무대에 올라간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모두 6개다. <로미오와 줄리엣>(1998년 초연)을 시작으로 <리어왕>(1999), <한여름 밤의 꿈>(2002), 멕베스를 재해석한 <환(幻)>(2004), <십이야>(2008), <햄릿>(2009) 등으로 이어져왔다. 특히 <한여름 밤의 꿈>은 지난 4월30일과 5월1일 셰익스피어의 본고장인 영국 런던의 글로브극장(1300석)에 초청돼 완전 매진이라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올여름 ‘양정웅의 셰익스피어’ 중에서 국내 관객들이 만날 수 있는 연극은 <한여름 밤의 꿈>과 <십이야>다. 명동예술극장(극장장 구자흥)이 8월의 레퍼토리로 선정해 두 작품을 한 달 내내 번갈아가며 공연한다. ‘가족극’이라는 타이틀을 겉으로 내걸진 않았지만, 올여름 가족이 함께 볼만한 연극으로 이만한 공연도 별로 없어 보인다.
- 셰익스피어 연극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껴 전작 연출까지 생각하는가.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이 가장 큰 특징이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제한된 시간과 공간, 문화적 특수성 같은 것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희극과 비극의 양 측면을 모두 반영해 인간의 드라마를 그려내기 때문에 생동감과 재미가 있다. 음악과 춤을 포괄할 뿐 아니라 공간에 대한 상상력이 자유롭다. 그야말로 자유분방한 연극성을 갖고 있어서 새롭게 해석할 여지가 많다.”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이른바 근대의 사조로 불리는 자연주의와 리얼리즘이 태동하기 전이다. 그래서 “현실 혹은 무대의 제약으로부터 훨씬 자유롭다”는 것이 양정웅의 설명이다. 삶과 죽음이 분리되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직 이성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이었으니, “삶과 죽음이 동행하고, 유령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드라마적 스펙터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마시고 있던 토마토 주스에 꽂힌 빨대를 가리켰다. “이 빨대가 칼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카페가 사막이나 바다가 될 수 있는 낭만적 상상력이 셰익스피어 연극에 있다”고 했다.
- 양정웅은 셰익스피어를 특히 영상적으로 재해석해 보여준다. 미장센을 중시한다는 것은 양정웅 연극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역사주의적 관점의 평자들에게 비판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다섯 살 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녔고 미대에 가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영상세대다. 영화, 만화, CF 같은 것들이 내 감각을 키워줬다. 그러니 내 연극에서 이미지가 두드러지는 것은 필연이다. 미장센은 원래 영화가 아니라 연극에서 발생한 용어다. 음악과 빛, 무대가 어우러져 관객 앞에 하나의 총체적인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인데, 사람은 그렇게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통해 생각하는 법이다. 내가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렇게 미장센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인간 그 자체를 얘기한다는 점도 마음을 끈다. 어쩌면 나는 고전 애호가일지도 모른다. 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동시대의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는 작업은 나하고 별로 맞지 않는다.”
- 한국 연극계의 빈한한 현실 속에서, 연출가 양정웅은 흥행이라는 측면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보여왔다. 해외 초청 공연도 가장 많은 축에 속한다. 1997년 창단한 극단 ‘여행자’는 이제 좀 먹고살 만한가.
“아직도 어렵다.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여전히 숙제다. 독일 연출가인 막스 라인하르트가 얘기한 연출가의 덕목 중에서 첫번째가 ‘연출가는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나는 그 말을 늘 기억한다. 빵도 이상과 꿈만큼 중요하다. 영국에서 공연하면서 가장 부러운 게 바로 예술가들에 대한 처우다. 우리하곤 비교가 되지 않는다. 프랑스의 연극인 복지 시스템도 부럽기 그지없다.”
- 연출가로서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뭔가.
“대중과 잘 만나는 것이다. 대중성에만 빠져서는 당연히 안될 일이지만, 제대로 만든 연극으로 대중과 잘 소통해보려고 고민한다. 관객의 눈높이에 맞는 연극들은 앞으로 더 많아져야 한다. 생각하는 연극, 메시지가 센 연극도 있어야겠지만, 고단한 사람들의 삶을 위로하고 웃음을 줄 수 있는 연극도 있어야 한다. 셰익스피어가 바로 그런 연극쟁이였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경향신문 ‘오늘의 핫뉴스’
▶ “한국이 준 음식은, 세 끼 모두 치킨버거”
▶ 독일 언론도 '범죄로 딴 은메달'… 오심 맹비난
▶ '무슨 염치로'… 조준호 판정번복 심판, 또
▶ ‘클럽서 10대女 성폭행’…문화부 공무원 기소
▶ 박근혜, 드디어… 안철수에 ‘첫 직격탄’
모바일 경향 [경향 뉴스진(News Zine) 출시!] | 공식 SNS 계정 [경향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세상과 경향의 소통 Khross]
- ⓒ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